[특별연재-3호] 일저 조성호의 『기천수련보감』

기천 몸짓을 넘어 단법과 심법까지 참된 수련으로 안내하는 안내서

김준 기자 | 기사입력 2024/08/06 [09:49]

[특별연재-3호] 일저 조성호의 『기천수련보감』

기천 몸짓을 넘어 단법과 심법까지 참된 수련으로 안내하는 안내서

김준 기자 | 입력 : 2024/08/06 [09:49]

 (2) 대를 이어가는 기천

 

기천이 처음 세상에 전해질 때는 초대 문주 대양 박정용 상인으로 시작되었으나, 1990년대 중반 대하 박사규 진인에게 문주가 계승되어 펼치고 있다. 현재 수련원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에 두루 있으나, 그 세력은 오히려 1980~90년대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기천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전하려는 지도자들의 노력은 아직도 용광로처럼 뜨겁기만 하다. 각자가 느끼고 깨달은 바대로 기천을 전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기천에는 3개의 법인이 있다. 사단법인 기천문, 사단법인 세계기천총연맹, 사단법인 기천협회이다. 그리고 각 지역에 수련원이 분포되어 있으며, 지도자에 따라 약간의 다른 특성을 띠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천 수련 내용이 방대하여 초창기 대양 박정용 상인이 배우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기천을 달리 가르쳤기 때문이다.

▲ 두 번째 기천 문주 대하(大河) 박사규 진인(眞人)

 

대하 박사규 진인은 대양 박정용 상인으로부터 1:1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박사규 진인은 사부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사부님께서 배우신 대로 가르쳐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박사규 진인은 무엇보다 기천의 원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늘 옛날 전통 그대로의 모습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사규 진인은 문주가 되기 전에는 기천문인회(氣天門人會) 회장을 맡아 대양 상인을 도와 기천의 중추적 역할을 했었다. 1:1 수련 과정에서 초대 문주 박정용 상인으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아 1996년 기천문주(氣天門主) 직책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1998년 평생 일궈 온 서울의 사업체를 접고 가족도 놓아둔 채 혈혈단신 계룡산에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대하 박사규 진인이 문주가 되어 계룡산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지에 수련원이 더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맨 처음 보령에 천룡 수련원을 시작으로 대구에 천여 수련원, 그리고 대전에 천라 수련원이 문을 열었다. 그 후로 대하 진인에게 지도받은 지도자들이 전국에 두루 수련원을 개원하여 지금에 이른다.
 

▲ 전찬욱 (사) 기천협회 총재

 

일찍이 대양 박정용 상인이 세상에 처음 기천을 전하고 가르치던 1970년대 수련을 시작한 전찬욱 총재는1983년부터 지도 범사로 활동했다. 그는 직장에서도 기천을 가르쳤으며, 그 이후 1998년부터 지금까지경희궁 공터에서 대중들에게 기천을 널리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낮은 산 수련원을 개원하여 지금에 이르며, 현재는 (사) 기천협회 총재로 기천의 한 축을 이끌고 있다.

 

전찬욱 총재는 대양 상인의 초창기 제자로서 기천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특히 독특한 기천 무예의 원리를 연구하고 응용하여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렇게 기천을 늘 연구하고 가르치는 큰 스승으로 많은 제자와 함께 현재 서울에서 기천을 전하고 알리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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