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58호] 손용헌 목사의 『네가 왜 거기 있느냐』

손용헌 목사의 신앙간증집

박한진 발행인 | 기사입력 2023/06/02 [16:33]

[특별연재-58호] 손용헌 목사의 『네가 왜 거기 있느냐』

손용헌 목사의 신앙간증집

박한진 발행인 | 입력 : 2023/06/02 [16:33]

 5) 새벽기도

 

주일이나 수요일, 금요일 등 일반 예배 때는 함께 가줄 사람이 많아서 걱정이 없었는데, 새벽이 문제였다. 가까운 곳에 안씨라고 부르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무척이나 가난한 분이셨다. 우리 집과는 저 멀리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집에 살고 계셨는데, 낡은 토담집이어서 어린 마음에도 곧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을 했으나 현재 부인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으나 내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난 후에는 신앙을 가지고 사는 그분이 존귀해 보였다. 나사로를 생각나게 하는 분이었다. 육신은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분, 오로지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다.


지난날 나는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인간이었던가!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육신적인 것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고 상대했던 나의 삶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바울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사람을 외모로 보았으나 예수님을 알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이었던가를 회개하지 않았던가! 바울은 예수님을 육체대로 평가하여 예수님을 정죄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으나 예수님을 바로 알고 난 후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다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후 5:16).


나사로를 연상케 하는 그분에게 과연 누가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보는 평가와 신자들이 그를 보는 평가와 예수님이 그를 보는 평가는 다 다르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분을 어떻게 보시겠는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상적인 시각에서 보면 나사로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사로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복 주신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으리라. 우리는 주님의 인격과 지식으로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열려야 할 것이다.


이분은 나사로 아저씨라 부르고 싶을 만큼 착한 아저씨였다. 이분이 새벽기도를 잘 다니는 것을 알고 새벽에 기도하러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셨다. 그래서 내 방 뒤쪽으로 난 창문에 줄을 늘어뜨리고 안쪽에는 소의 목에 달아 매는 놋쇠 종을 구하여 걸어 놓았다. 밖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안에서 소리가 나도록 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새벽에 줄을 당겨 소리가 나면 내가 나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분에게는 시계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시계가 귀한 때였다. 그분은 새벽별을 보고 시간을 어림잡아 기도하러 가는 분이었다. 대부분 일찍 가서 새벽 종을 맡아 놓고 치는 분이었는데, 새벽에 오시는 시간이 들쭉날쭉 대중이 없었다. 그래도 그게 문제랴. 내게는 한없이 고마운 분이었다. 나는 보통 새벽 2시나 3시경에 일어나 마루에서 울리는 벽시계의 괘종소리를 들어야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점자 시계가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었다. 그래서 그 아저씨가 더 고마웠다.


그런데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올 때가 문제였다. 별이 없는 관계로 시간을 구별하기 어려우니 낭패인 것이다. 어떤 날은 새벽 1시가 넘어서 오기도 하고 4시가 넘어도 오시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나도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 집을 나섰다. 뒷동산으로 통하는 옛날 다니던 길이고, 최근 여러 번 다니던 길이어서 희미한 시력으로나마 더듬어 가다 보면 교회에 다다르곤 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보통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길을 흐릿한 시력으로 더듬어 가다 보면 30여 분은 족히 넘어야 도착했다. 길은 좁아서 한 사람 겨우 지나갈 만했고 조금 넓은 곳이라야 두어 사람이 빠듯이 지날 만큼 협소했다. 오히려 길이 좁아 이로운 점도 있었다. 길 양편에는 풀이 우거져 있고 가운데는 사람이 다니는 반질반질한 길이라 구별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눈이 오는 날이었다. 눈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새벽기도는 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새벽인가 그 아저씨가 오시지 않아서 나 혼자 문을 열고 나가니 몹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볼을 때렸다. 그렇다고 새벽기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쪽문을 열고 뒷동산 길을 찾아 나섰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길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천천히 조심조심 눈길을 헤치며 걸어갔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리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이었다. 몇 군데 찰과상도 입었고 등에 걸치고 왔던 외투도 잃어버렸다. 그 외투를 찾으려고 한참을 헤집다가 마침내 내동댕이쳐졌던 외투를 찾아냈다. 추운 것보다도 길을 잃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한참을 눈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길을 찾았다.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고 새벽기도 갈 때는 언제나 찬송을 부르며 갔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후에 안 사실인데 내 찬송 소리를 들으면 ‘아, 손 아무개가 새벽기도 가는구나’ 하고 동네 사람들이 알았다고 한다. 이날은 새벽기도에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 안에 들어가기가 멋쩍기도 하고 또 부끄러웠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데 지각을 하다니, 이런 무성의는 다시 보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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